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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은주
작성일 2010-07-19 (월) 16:36
ㆍ조회: 445  
[미술사 강의(특강)]우이동 박물관에 깃든 르네상스의 가을
박을복자수박물관 문화교실
최경한 교수님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의
<우이동 박물관에 깃든 르네상스의 가을>

일시: 2007년 10월 20일
장소: 우이동 박 을복 자수 박물관
강사: 최 경한 서울여대미대 명예교수(전 서울여대 미대 학장, 백 남준 기념사업회 회장)
주제: 르네상스의 조각과 회화


왜 르네상스인가?

르네상스는 인류의 예술사에서 가장 큰 획을 긋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의 기나긴 천 년 동안 종교의 제단에 바쳐졌던 예술이 비로소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Renaissance)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에서 깨어나고 개인주의와 사적 자본주의의의 맹아가 싹트는 르네상스에 이르러 예술 분야에서도 비로소 “자신의 창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는 ‘예술가’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시대적, 경제적 배경
르네상스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은 15세기와 16세기에 걸친 이태리의 베네치아와 피렌체(현재 명칭 플로렌스)이다. 그런데 왜 이태리에서 번성했던 예술에 ‘부활과 재생’이라는 의미의 불어명칭이 붙여졌을까?
16세기의 미술사가인 바사리가 <이태리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에서 15세기 예술을 서술하면서 이 시기의 예술이 초자연적 신의 영광에만 헌정됐던 중세미술과 달리 고대의 문화와 예술을 새시대에 새로운 양식으로 담아냈다는 뜻에서 재생/부활을 의미하는 레나시타(renascita)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르네상스 라는 단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참 후인 19세기에 스위스 예술사가인 제이콥 버크하트(Jacob Burckhardt)가 이를 ‘르네상스’라는 불어로 명명했는데 이것이 전 세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이 유독 이태리에서 화려하게 꽃피게 된 데는 경제적 이유도 있다. 당시 이태리 최고의 세속 권력자는 코시모 메디치(Cosimo di Giovanni de' Medici, 1389~1464)였다. 가문의 부와 막강한 정치권력을 바탕으로 피렌체 공화국을 지배했던 그는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재산을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 진흥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 건축가들이 그의 막강한 경제적 후원아래 창작에 전념해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것이다.
조각가인 도나텔로, 기베르티, 루카 델라 로비아를 비롯해 건축가인 부르넬레스키, 미켈라초 그리고 화가인 안젤리코 수사(Fra Angelico), 필리포 리피 수사 등이 코시모의 지원을 받아 작품활동을 했다. 이가운데 프라(Fra:수사라는 의미) 필리포 리피는 세속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작품활동이 뜸해지자 메디치 가에 아예 가택연금 상태로 해두고 작품을 그리도록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1464년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코시모에게는 국부(國父)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졌다.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
르네상스 예술에는 중세미술에는 없던 강한 특징, 즉 명암과 원근법 등 새로운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고 해부학적 정확성을 꾀하는 극사실주의도 등장한다. 극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이를 독일 토양에 이식시킨 독일미술가 뒤러의 작품이 특강의 첫 작품으로 등장했다. “손”과 “억새풀” “토끼” 등 슬라이드를 통해본 그의 작품을 보면 사진이나 다름없는 극사실 정밀묘사를 보이고 있다(동영상 수록).
반면 예술이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시대적으로는 중세를 잇고 있는데다 예술작품의 후원자가 교황청이거나 교황청의 권력과 세속적으로 연대한 부호들이었기 때문에 르네상스 예술은 종교적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80평 정도의 시스틴 성당의 천정에 천지창조의 종교적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가장 유명한 부분이 아담과 신의 손이 서로 맞닿을까 말까 하는 장면인데 이 그림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인간과 신이 서로 맞잡고 있던 손을 인간이 놔버리는 장면이라는 설이고 두 번 째는 신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인간이 다가가 잡으려고 하는 장면이라는 설이다. 신학자들 해석은 두 번 째 설이 다수설이지만...사실은 어떤 것일까?
여담이지만 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완성시켜야 하는 프레스코화로 180평의 천정을 가득 채우는 것은 거의 육체적 고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정치적 음모와 도발의 희생양이었다는 설도 있다.
몇 백년의 시간이 지난 후세에 일본 NHK 주도하에 시스틴 천장의 그림에 두껍게 낀 성당의 촛불 그을음을 벗겨내는 대대적 보수작업을 했다. 원형을 복원한다는 의미였다. 그랬더니 고졸하고 경건한 멋이 모두 사라지고 낯설고 생경한 그림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시간이 예술의 중요한 요소라는 반증일 것이다.

천지창조 외에도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종교적 예술작품이 많이 창작됐는데 다음에 언급되는 몇 가지 주제가 종교적 핵심 키워드(성흔, 예수의 책형, 슬퍼하는 마리아, 피에타 등)라고 할 수 있다.

1. Stigmata 성흔(聖痕):
예수와 가장 가까운 이미지의 성인이 성 프란치스코이다. 특강에서는 그가 살던 아시시의 수도원에 남아있는 두 점의 그림, 성 프란치스코가 성령으로부터 성흔을 받는 장면을 비교해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중세 때 그려진 그림으로 이야기 묘사에 치우쳐 작품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반면 동일한 주제와 거의 동일한 구도로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파 회사의 창시자인 지오토(Giotto)가 그린 스티그마타는 좀더 사실적이며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2. Crucifixion 십자가 책형:
십자가 책형을 주제로 르네상스 미술 특강에 등장한 첫 그림은 안토넬로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의 그림이다. 중앙에 큰 십자가에 예수가 중앙에 매달려 있고 양쪽으로 빈약한 나무에 두 사람의 다른 죄수가 매달린 중세의 그림으로 뚜렷한 원근법적 특징을 보이고 있고 인체묘사도 르네상스적 역동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십자가 아래는 해골 무더기가 쌓여있고 여기서 마리아와 요한이 슬퍼하고 있다.
이당시 책형을 묘사한 작품들을 보면 극도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죽은 예수의 손과 발에는 못 자국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고, 옷은 가슴부근에서 찢겨있거나 가슴에 상흔이 남아있는 그림이 많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은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회화의 거장인 루벤스로 이어진다. 특강 내용에 등장한 루벤스의<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보면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흰색 천을 사용하는 등 현실적인 장면이 역동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벨기에의 한 성당에 있는 그림인데 이 그림이 모티브가 된 것이 유명한 “플란더스의 개”.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소년 네로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들어간 성당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이 그림을 보면서 사랑하는 개와 함께 얼어 죽는 장면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문제의 그림이기도 하다.
특강에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의 작품이다. 십자가 책형이라는 고통의 주제가 시대를 달리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

3. 슬퍼하는 마리아(Lamentation):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모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보는 이들에게 깊은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특강에서는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작품이 등장한다. 만테냐의 마리아는 젊고 아름답게만 묘사됐던 기존의 작품과는 달리 슬픔에 지친 늙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30이 넘은 아들을 둔 마리아가 젊고 아름다울 리가 없다는 화가의 현실인식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또 눕혀진 예수의 시신이 뚜렷한 원근법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상흔이 뚜렷한 발바닥이 먼저 보이고 원근법에 따라 상반신이 그려져 있다.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늙은 마리아는 예수의 머리맡에 그려지고 있다.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의 총칭을 피에타(Pieta)라고 하는데 이태리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벨리니의 <피에타>와 엘 그레코의 <피에타>등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이번 특강에 등장한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이다. 르네상스 조각의 완성자라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답게 우아미와 완성도의 극치를 보인다.

4. 수태고지(Annunciation):
수태고지는 성모 마리아가 성자를 잉태 하게 될 사건을 대천사 가브리엘에게서 통보 받는 장면이다. 수태고지는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흔한 주제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는 성모 마리아의 표정과 옷차림, 이를 전달하는 가브리엘의 모습, 두 인물의 위치 등을 비교해서 보면 아주 흥미롭다.
강의에 등장하는 수태고지는 두 작품이다. 하나는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작품으로 수태고지를 받는 마리아가 놀랍고 두려우며 피하고 싶다는 느낌으로 그려진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수태고지는 성모가 의연한 모습으로 이 놀라운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럽에서의 수태고지는 왼쪽에 천사장이, 오른쪽에 마리아가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파벳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기 때문에 왼쪽에서 먼저 말을 하고 이 말이 오른쪽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발견된 수태고지는 마리아가 왼쪽에 천사장이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조각

르네상스는 또 조각의 시기이기도 했다. 조각은 초기 르네상스 영웅시대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구현매체였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리석 속에 잠들어 있는 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회화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리스 로마식 영웅 숭배의 정신이 담기고 조각 특유의 질량감과 균형감이 잘 드러나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야외조각으로 특강에서 묘사된 것은 두 작품이다.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과 베로키오의 <콜레오니 장군 기마상>이다. 베로키오는 도나텔로의 제자이지만 엄격한 사실주의와 활달한 작품으로 스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각을 만들어 냈다.

특강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조각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유명한 조각가였던 기베르티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기베르티(1378-1455)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원근법을 구사해 산타 마리아 데르 피오레 성당의 문에 <천국의 문>이라는 청동제 양각작품을 제작한다. 후일 로뎅(1840-1917)이 이 천국의 문에 상응하는 <지옥의 문>을 제작했는데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옥의 문>의 일부로 제작된 것을 나중에 따로 떼내서 독자적인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다.

특강에 등장한 르네상스 조각가운데 가장 독특한 작품이 도나텔로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도나텔로는 뛰어난 조각적 균형이 잘 드러난 <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이나 볼륨감있고 관능적인 <다비드>상을 조각했지만 말년에 나무에 등신대 크기로 조각한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에서는 근현대의 조각예술을 무색케 하는 전율적인 내면의식을 보여준 독특한 예술가였다.
도나텔로는 10살이 되던해부터 유럽에 퍼져 6년 동안 계속된 흑사병 때문에 주변에 있는 세 사람 중 한사람이 사망하는 시대에 민감한 청소년기를 맞았다. 수많은 죽음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성장한 어두운 기억이 그가 말년에 조각의 대가가 되어 표현의 구속적인 제약을 벗어나면서 <막달라 마리아>에 절정을 이룬 것으로 해석된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산발한 머리카락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고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한 노파의 모습을 묘사한 등신대 크기의 조각이다. 표현방식이 6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범하며 처절한 내면의 고통과 절규를 표현한 기법이 뭉크의 상징주의와 마티스 등 야수파를 연상케 할 정도로 현대적이다. 절제되지 않은 내면의 고통과 광기가 그대로 드러난 이같은 작품이 어떻게 당시 엄격한 교회적 질서하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특강에서 가장 부각된 예술가는 도나텔로였다. 만약 예술성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결정된다면 그리스 시대의 미의식을 완벽하게 모방적으로 재현해낸 미켈란젤로보다는 도나텔로가 더 훌륭한 예술가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한 자의 빛나는 승리: 다비드
예술가들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약한 자가 역경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모습일 것이다. 거인 골리앗에 대항해 승리한 다윗(다비드)의 모습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도 인기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다비드를 주제로한 그림이나 조각은 대부분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밟고 있는 형태가 많다. 강연에 등장하는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다비드>가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카라바지오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비드의 얼굴을 보면 미소년이거나 영웅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다른 그림과는 달리 연륜이 제법 있어보이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는 카라바지오가 다비드의 얼굴에 자화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추기경의 도움으로 예술활동을 한 뛰어난 화가이기는 하지만 최하층민으로 태어나 성장한 그는 각종 싸움과 범죄, 심지어 살인까지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바지오가 그림 속에 자화상을 숨긴 것이 세상을 향한 비웃음인지 아니면 주문자들의 의도에 묻혀 사라지는 예술가의 개성을 주장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비드는 조각가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었다. 강의에 등장하는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은 청동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이 역동감있게 그려져 있지만 모자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완전한 누드묘사를 꺼렸던 의식이 모자와 신발로 남아 있다는 해석이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완전한 인체미를 자랑하고 있다. 발 밑에 골리앗의 머리가 없고 대신 골리앗을 잡을 때 사용한 도리깨를 어깨에 맨 형태이다.
그런데 잘 보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길다. 인체의 황금분할적 비례가 아닌 것이다. 왜 그럴까? 바로 다비드 상이 서있는 대좌 때문이다. 거의 사람 키만한 대좌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대좌 밑에선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다비드 상의 상반신만 강조되어 보이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관객의 시선과 눈높이에 맞춰 충실하게 조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바로크 미술로 이어진다

우이동 박 을복 자수박물관에서 있었던 르네상스 특강은 르네상스 미술이 16세기 중엽이후 강한 왕권과 함께 나타난 거칠고 과장된 남성적 경향의 바로크 미술에 그 자리를 넘기게 된다는 설명으로 끝을 맺었다.
단풍이 아름다운 10월, 북한산 기슭에서 몇 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5세기 이태리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산책하면서 르네상스의 예술을 조감했던 하루였다.

(이 글에 언급된 각종 작품은 박 을복 자수박물관 문화교실에 올라있는 동영상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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