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복 회고록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신자 글
40년지기이며 선배이신 박을복 선생님

 김선숙 글
나의 은사 박을복 선생님

 오순희 글
우리 어머니

 박을복 회고록
주부로서 집을 많이 비우고 엄마로서 아이들을 자상히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네 아이 모두 곧고 바르게 커주었고 각자 자기 길을 찾아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떠나고 사회생활도 시작하였다. 그중 둘째 오순희는 나를 이어 섬유미술 공부를 하였다. 67년에 가졌던 「제2회 개인전」에는 당시 이대 미대 졸업을 앞둔 순희가 가세를
하여 모녀전이 되었다. 딸의 새 출발을 위해서도 그렇고 생활 속에서 작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뜻있는 전시회라 생각되었다. 30여 점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고전적 기법이 창작물에 녹아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시도하였으며 한편 세대간의 비교가 되어 좋았던 것 같다.그 후 순희는 이 길로 정진하여 미국 인디아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어번(Auburn)대학에서 조교수 생활을 하다가 불란서로 건너가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현재는 덕성여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모녀간에 주고받는 정이 있어서인지 12년 만에 다시 「모녀전」을 열었는 데 이번에는 순희가 유학하고 있던 파리에서였다. 현지 미술 인들이 와서 동양의 전통미에 찬사를 보내주었고 특히 교포들은 오래 못 보던 고국의 진미를 보는 즐거움에 환호하였다. 이 기간 중 불란서 미술대학 교수들과 교류도 가졌으며 개구리 수집가인 Art Deco 대학의 텍스타일 주임교수인 Dupeux 교수의 집에 초대를 받아가 개구리를 수놓아주기도 하였다. 전시회를 마치고는 공장견학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변덕스러운 파리의 날씨였지만 구름이 걷혀 싱그러운 나무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의 묶음은 내가 항상 작품화하고 싶었던 광경이었다. 파리 전시에 이어 예정된 미국 전시회는 메릴랜드에서 열렸다. 그곳은 워싱톤이라 친한 친구들도 있고 도미할 때마다 찾던 곳이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약 10일간이나 전시회를 하였는데 그때 작품 구매 제의도 받았으나 팔지는 않았다. 특히 '종류수'는 꼭 내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하고 있어 더욱 그랬다.귀국하여 외국 나들이에 느낀 바도 있고 하여 젊은 시절부터 익혀왔던 가야금에 다시 손을 댔다. 이도 우리나라 여인들의 손길이 숨어 있어 자수와 상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소리가 한이 맺힌 흐느낌이라고 하다면 자수는 제약이 있는 조용한 표현이 있으며, 가야금이 억눌림의 음이라면 자수는 살포시 드러나는 색조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불교적인 윤회의 생활이 꽃이 되고 싶어 이런 편법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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