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복 회고록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신자 글
40년지기이며 선배이신
박을복 선생님

 김선숙 글
나의 은사 박을복 선생님

 오순희 글
우리 어머니

 나의 은사 박을복 선생님

     김선숙
     前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개성 호수돈 여학교 학생시절이었다. 자수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선 우리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동경 유학에서 갓 돌아오신 선생님의 참신하고 재기에 넘친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소망 같은 것을 안겨주셨다. 굽 높은 뾰족 구두에 신여성 차림으로 사뿐히 걸어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는 신기하게 지켜보곤 하였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의 일, 일제치하에서 이 땅의 백성들은 억압과 규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체, 관에서 명령하고 지시하는 대로 별도리가 없는 그러한 시기였다. 아침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모든 학생들은 빠짐없이 교정에 집합하고 대열을 정돈한 다음, 천황이 있다는 동쪽을 향하여 깊숙이 허리를 굽혀 경례를 했다. 획일적이고 통제된 사회에서, 개성이니 자유니 창의성이니 하는 낱말들을 우리는 애당초 들어본 적도 없었다. 8. 15 해방에서 이전의 일이다.
이 같은 와중에서 박 선생님은 남다르셨다. 규범과 규제에 묶여 있다하여도 관례에 답습이나 모방은 생명력이 없는 것임을, 진정한 예술은 호기심과 창의성에 의해 이루어짐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꽃잎 하나 풀 한 포기를 수놓는 데도 선생님은 재래의 방식이나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독자성이 표현되도록 인도해주셨다. 선생님의 자수 시간에도 남들이 하는 대로 우리는 주머니, 수저집, 방석, 족자, 병풍들을 수놓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재래의 수법이 아닌 학생들 개성이 표현된 작품이 되도록 인도해주셨다. 비록 완성품이 아닌 미숙한 것일지라도 서투른 우리 작품을 선생님은 흠이 없는 모방보다는 더 좋아하시며 칭찬하고 격려해 주시곤 하셨다. 이는 암울한 세대에 눌려만 지내던 우리에겐 참으로 신선한 바람이었고 놀라움이었다. 그 시절에 별로 듣지 못한 개성, 창의성, 예술의 참된 의미 같은 것들을 선생님은 우리 마음속에 일깨우고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어주신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졸업을 하여 학교를 떠났고 박 선생임은 결혼하시어 학교를 그만두셨다.
남편을 보필하고, 4남매를 키우시며, 더욱이 6.25 동란으로 부산에 피난가시고 앞으로의 발전을 도모하시기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오셨다. 고운 비단실을 여러 색으로 배합하여 꼬아서 한뜸한뜸 수를 놓아 아름다움을 자아내신 선생님의 탁월한 솜씨는 이 나라 자수계에 금자탑을 이루고 길이 빛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