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복 회고록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신자 글
40년지기이며 선배이신
박을복 선생님

 김선숙 글
나의 은사 박을복 선생님

 오순희 글
우리 어머니

 40년지기이며 선배이신 박을복 선생님

     이신자
     섬유미술가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박을복 선생님을 내가 만나 뵌 것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6.25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55년에 미술대학을 졸업한 나는 직장생활 거치지 않고, 그 해 가을 결혼하여 힘들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나라의 살림살이도 힘들었고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각박하여 모두가 허리띠를 힘들었고 졸라매고 근검 절약하던 때였다.
결혼 후에 목불(나의 남편 장운상 화백)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분들께 나를 인사시키기 위해 여러 곳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박 선생님이시다.
어느날 단풍이 곱게 물들은 비원의 아름다움을 돌아보고 모교가 있던 혜화동을 지나서, 노란 단풍이 운치를 더하던 서울대의 낭만의 거리로 해서 도착한 곳이 예지동 박 선생님의 댁이었다. 지금같이 택시나 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목불과 나는 웬만한 거리는 늘 걸어서 다니곤 했다. 선생님은 목불과는 각별히 가까웠던 분으로 처음 본 인상은 이 분이 개성분이 아닐까? 하고 느낄 정도로 깔끔하고 빈틈없어 보였다. 박 선생님은 성품만큼이나 집안 분위기도 완벽하게 꾸며 놓으셨는데 자수를 응용하여 집안을 꾸민 것이 여간 안목이 높은 것이 아니었다. 일본여자미술대학교 시절에 작업하신 자수작품에서 자수로 된 여러 실내장식품에 이르기까지 집안 전체가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가득 채워져 여간 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자수작품 가운데 두 마리의 사슴이 마치 살아있는 것같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던 가리개는 나를 놀라게 했다. 사슴의 표정과 털의 표현, 색의 명암 처리와 굵고 가는 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능숙하게 처리한 자수법의 신선함이 서로 어우러져 바늘로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부군이신 오 선생님은 소아과 의사로서 매우 치밀하고 꼼꼼한 성품을 지닌 분으로 보였는데, 이 댁 두 분은 너무 완벽하다고 할 정도의 성품을 지닌 것 같아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지 않는다면 화합이 힘들 것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는 박 선생님 보다 오 선생님을 자주 뵐 수 있는 데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오소아과에 가면 박 선생님은 부재 중 일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박 선생님은 세대를 초월한 신여성으로 「입생」의 「노라」가 되신 것이 아니었는지? 당시 목불은 오 선생님 편에서 나는 박 선생님 편에서 그 두 분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박 선생님과의 만남도 이제 40을 헤아린다. 남편인 목불을 보고는 입버릇처럼 당신은 관을 짊어지고 다닌다며 건강에 유념하라고 당부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벌써 가버린 목불과 우향(박래현)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살아 있다면 내가 얼마나 용기를 얻고 일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늘 안타까워하시던 선생님. 박 선생님이 좀 더 자유로우셨다면, 그리고 오늘 이 시기에 활약하셨더라면 얼마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셨을까? 그래도 우리나라 자수계의 여명기를 이끌어 오신 한 분으로 내일을 위해 나이도 잊고 일에 몰두하시는 선생님은 예의 개성 분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정말 박 선생님을 뵙고 있노라면 세월을 붙들고 싶은 심정이다.
1996.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