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복 회고록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신자 글
40년지기이며 선배이신 박을복 선생님

 김선숙 글
나의 은사 박을복 선생님

 오순희 글
우리 어머니

 박을복 회고록

지난 삶을 돌아보며 평생을 자수 하나에 바치려고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생활에 충실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실은 자수 하나에 집념하기에는 쉽지 않은 삶이었다. 여자로서 한계라 할까 자평해본다. 새벽 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行步)가 있었다고 어여삐 여겨주기 바란다.



나는 1915년 당시의 개성 읍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의 1남 3녀 중 막내로 자라며 부족한 것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호수돈 보통학교와 호수돈 여고를 다녔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소녀답지 않게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야단도 더러 맞았던 것 같다. 영어를 남보다 잘했고, 문학에도 취미가 있어 세계명작들도 열심히 구해 읽었다.
자수에는 취미가 있었으나 이것을 내 평생의 업으로 삼으리라고는 당시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내놓고 보니 이 시절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첫째는 문학소녀로서 넓은 세계에 대한 꿈과 호기심을 키웠다는 것이고, 둘째는 개성사람의 자존심과 기질을 몸으로 익히고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을 평생 지닐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여고를 졸업하며 서울로 올라와 이화여전 영문과 예과에 입학했다. 서울의 생활이 개성에 비해 낯설고 폭이 넓게 느껴졌지만 나는 왠지 무언가 다른 더 넓고 큰 세상으로 가야할 것같은 공상에 잠기곤 했다. 마침 이종사촌언니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방학 때 고향을 찾은 언니에게 동경유학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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