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복의 자수예술
     이경성, 미술평론가
     前 국립현대미술관장

 박을복여사의 작품집 간행을 축하하며
     운보 김기창, 동양화가

 작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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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작품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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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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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석과 보료
     소품

 박을복여사의 작품집 간행을 축하하며
   운보 김기창

우리나라 근대 자수의 지평에 한 획을 그은 자수가로서 80 평생을 결산하는 박을복 여사의 작품집 출간을 먼저 축하해주고 싶다. 동시대에 태어나 함께 살아 온 친구이며 동료 예술인으로 많은 업적을 남겨 후세를 장식하고 선도한 여사는 일찍이 남성도 하기 꺼려한 미술대학을 다녀 여장부적인 생애를 시작하였다. 물론 구중궁궐 겹겹이 쌓여 답습을 미적으로 알았던 이조 아낙네들이 피일(避日)과 욕구 발산의 수단으로 전수하였다는 자수를 전공하였다는 것은 얼핏 여사의 선도성과 맞지 않는 것 같으나 그의 작품은 고전적인 미덕 감각이라 할 수 있는 잔잔하고도 우아한 맛을 가지고 있는 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역동적이고 기민한 힘을 함께 엿보이기도 한다. 전자와 같은 측면은 '御所車'와 '菊花와 鴛鴦'에서 후자의 측면은 6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언젠가 박을복씨의 작품 전을 보고 자수가 "바늘 끝에 아로새겨진 오색의 아름다움" 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이것이 외관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면 내적인 면에서 자수의 참다운 미는 우리 조상들의 수줍고 드러나지 않는 자수의 참다운 미는 우리 조상들의 수줍고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꽃잎에 옮겨 놓은 듯한 영롱함이 담겨 있을 때, 그 극치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생활의 면모가 깊이 배어 있는 자수의 아름다움은 어떤 이상향의 차원으로 뛰어 넘는 것은 못되지만 우리 곁을 맴돌며 때로는 자극을 때로는 희열을 자아내는 독특한 맛을 담고 있다. 힘있게 뻗어나가는 줄기는 다수확 품종이 될지는 몰라도 맛나는 감칠맛을 주지는 못한 듯, 자수의 가치는 앞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의 전통조형미의 밑거름이 되어 풍부한 예술적 자양분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표현기법이 다양해지고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확대되어가고 있는 현대미술에서도 정신을 집중한 표현의 치밀성을 보여주려면 바늘 끝에 머금고 있는 이슬과도 같은 자수적인 미의 특성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아름다움의 독특성을 돋보이게 하는 기법이 아닌가 싶어 나는 이렇게 평한다. 여사는 이를 아는 듯 평생을 자식 기르는 부모의 심정으로 손끝에서 바늘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자수는 밑그림으로만 여겨질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자수의 밑그림(하도)이 자수에 대해 보조 역할 밖에 못하는 것이 자수의 연출이 본(本)에 대해 너무도 우월하고 독창적인 조형성에 충만하기 때문인 것과도 같다. 그리고 이는 어찌 보면 현대화가 고전적인 리얼리즘에만 머물 수 없었던 이치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여사의 작품이 발전해 온 경향도 이런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앞서 언급한 '御所車'와 '菊花와 鴛鴦'이 주옥(珠玉)같은 보석이라면 후반기의 작품은 오히려 현대적인 추상회화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라져 가는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성에 걸맞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서 자수의 현대화를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은 여사의 평생은 우리 끊겨진 전통과 새로운 현대를 잇는 외로운 가교와도 같은 선구자로서 그 모범을 후세에 길이 남기게 될 것이다.

김기창. 1995. 7.